세계적 엑셀러레이터 500 스타트업(500startups)의 운영진 중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한국계로 보이는 젊은 청년. 갓 대학교를 졸업한 것만 같은 앳된 모습이지만 그가 맡은 일은 절대 가볍지 않다. 팀 채(Tim Chae)는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액셀러레이터 중 하나인 500 스타트업(500Startups)에 선발된 창업가들을 바로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창업가 이력. 그는 보스턴의 벤처캐피털에서 인턴을 했으며, 열아홉 세에 스타트업을 창업해 500 스타트업의 배치 3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사업에 온전히 몸담기 위해 대학교를 중퇴하고 실리콘밸리에 왔다.
한편 팀 채의 한국 사랑은 남다르다. 그는 9세에 미국에 이민을 가 2004년에 한 차례 방한한 이후, 지난 5월에 열린 비론치 2014에 스타트업 배틀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기 위해 10년 만에 한국땅을 밟았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시간이다. 한국의 발전상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그가 괄목상대한 것은 한국의 스타트업들이었다. 한국 일정 이후 미국에 돌아온 팀 채는 500 스타트업 블로그에 ‘한국 스타트업에 대해 알아야 할 점 6가지’를 정리(링크)하기도 했다. 그리고 글의 끝에 앞으로 500 스타트업은 #500 김치 프로젝트에 착수할 거라는 말을 남기며 세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중심가인 미션(Mission St.) 가에 위치한 500스타트업 공동업무공간에서 팀채를 만났다. 그가 젊은 나이에 VC가 되기까지 창업가로서 겪었던 사건들과 그로 인해 얻은 교훈, 그리고 한국 진출에 대한 500스타트업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About Tim Chae
500스타트업에서 상주 창업가(EIR, Entrepreneur in Residence)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나는 상주 창업가(ERI, Entrepreneur in Residence)로서 창업가 옆에 상주하면서 좋은 프로덕트를 만드는 데서부터 투자유치를 할 때까지 도와준다. 2011년에 내가 만든 스타트업이 500스타트업에서 선정한 배치3이었기 때문에 500 스타트업과는 같이 일한 시간이 상당하다. 당시 배치3을 잘해냈고, 실리콘밸리 내에 좋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500 스타트업 팀에 합류해 같이 일하게 되었다.
VC로 일하기 전 여러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창업가로서 가장 크게 받은 선물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타이밍, 둘째, 스타트업 창업가의 길로 일찍 들어선 것이다. 나는 첫 사업을 13세에 시작했고, 16세에는 평생 스타트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나이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대학 때 기숙사에서 스타트업 2개를 창업했다. 내 또래 친구들이 학교에서 미국, 유럽 역사나 문학을 배우고 있을 때, 나는 ‘만약 이게 한 사람이 보편적으로 배워야 하는 지식이라면 나는 스타트업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데 내 열정을 쏟고 싶다’ 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에서는 전공으로 테크 앙트러프러너십과 디자인을 선택했고, 스타트업의 다른 면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미국의 벤처캐피털 회사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일했다. 그때 경험이 이후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창업가로서 가장 큰 장벽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극복했나?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내가 창업한 스타트업이 500스타트업 배치3에 선정된 소식을 듣고 그 길로 바로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기로 했다. 그때 내 나이가 열아홉이었다. 보스턴에서 3,000마일을 42시간 동안 쉬지 않고 팀원들과 차를 운전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앞으로 살게 될 샌프란시스코의 아파트에 도착해 신분증을 보여주었더니 집주인이 집을 임대할 수 있는 나이가 아직 안 되었다며 임대계약을 받아주지 않았다. 다행히 아버지가 근처에서 일하다가 와주셨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될 뻔했다.
두 번째 경험은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을 하면서 겪은 어려움이다. 어린 나이로 스타트업을 시작해 어른들의 비즈니스 세계에 들어서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일찍 성숙해야만 했다. 창업가의 현실은 마크 주커버그나 스티브 잡스와 같은 ‘천재 괴짜’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창업하여 3년 반 동안 매진했던 스타트업은 자금 유치도 하고, 직원들도 있었다. 일주일에 80 ~ 100시간을 일했지만, 도무지 수익이 나지 않아 결국 사업을 접기로 했다. 그 여파가 2, 3개월 동안 지속할 정도로 힘들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겸손해진다.
미래에는 개인적으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가?
죽기 전에, 커리어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또 현실에서 변화를 주었으면 하는 부분에서 내 커리어로 이바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스러울 것 같다.
한국에서 태어나 10살 때 미국에 이민 왔다고 들었다. VC 입장으로서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독일의 헤이맷(Heimat)은 ‘영혼의 고향’이라는 뜻이다. 내 영혼의 고향이 바로 한국인 것 같다. 미국에 살면서도 주변에서 한국의 월드컵, 올림픽 이야기를 언급할 때면 가슴이 뛰었다. 10살에 한국을 떠난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올해 5월 비론치 2014(beLAUNCH 2014)의 심사를 위해 한국에 방문했는데 아주 반갑고, 친근했다.
한국은 스타트업 업계에서 점점 주목받고 있으며, 기회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뛰어난 IT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실리콘밸리에서 잘 이끌어주면 좋은 회사가 많이 나올 수 있다. 지금 내 역할이 실리콘밸리와 한국 사이에서 바로 그런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일이다. 한국 스타트업을 500스타트업을 통해 더 크게 육성해나가는 데 내가 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About 500스타트업
500스타트업은 “스타트업을 대중에게 빠르게 확산시킨다”는 표어를 쓰고 있던데.
500스타트업의 강점은 스타트업을 대중에게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500스타트업이 진행하는 액셀러레이터인 배치(Batch)는1,500개의 스타트업이 지원하고 그중 2%의 스타트업을 선발한다. 이렇게 1년에 총 4번 스타트업을 선발한다. 그 다음 우리 쪽의 마케터가 창업가와 1:1로 붙어서 마케팅 전략, 고객 확보를 도와주고, 또 시장 쪽 전문가가 창업가에게 네트워킹 전략, 채널 확산 등에 도움을 준다. 14주 후 데모데이에서는 가장 준비된 멋진 모습으로 무대에서 서서 자신의 스타트업을 선보일 수 있다.
어떻게 해서 500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인가
데이브는 500 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는 열정으로 이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는 다른 벤처캐피털에서도 800개가 넘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사례를 볼 수 있지만, 데이브 매클루어가 2009년 말 회사를 창업할 당시에는 어떤 벤처캐피털도 500 개나 되는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500이라는 숫자가 미국에서 유명한 닥터 수스(Dr·Seuss)가 쓴 동화책인 ‘500개의 모자’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벤처캐피털은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500개의 모자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8월 7일 ‘스타트업의 대량 확산 무기(Weapons of Mass Distribution)’(관련기사) 라는 제목으로 500스타트업에서 주최했던 콘퍼런스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이제 사람들이 상상하는 거의 모든 것을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기술에 힘입어 많은 스타트업이 생겨났지만, 문제는 아무리 좋은 서비스라도 사용자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창업가들은 어떻게 사용자를 자신의 서비스에 끌어들일 수 있는지 고민한다. 이에 착안해 우리는 ‘스타트업이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자신의 서비스를 확산시킬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이번 행사를 개최했다. 이 행사에는 에어비앤비, 리프트, 핀터레스트 등 실리콘밸리에서 급속도로 성장한 유수 기업의 담당자들이 강단에 서서 어떻게 사용자를 대거 끌어들여 성공적 기업이 될 수 있었는지 그 팁을 알려주었다. 따로 공간을 마련해 500스타트업측의 전문가가 창업가와 1:1로 마주하여 상담을 제공하기도 했다. 창업가들의 열렬한 반응으로 모든 자리가 매진되었고, 콘퍼런스의 여러 세션 내용도 유익했다는 평을 받았다.
▲2014년 8월 7일 500스타트업이 주최한 ‘스타트업의 대량 확산 무기’ 콘퍼런스
500스타트업은 한국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나
500스타트업은 한국에서 더 활발하게 투자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다. 현재 500스타트업의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인 배치11내에 한국 스타트업으로는 쉐이커(Shakr)와 크림(Cream) 두 회사가 있다. 앞으로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한국에서 1년에 10~20개의 스타트업을 실리콘밸리로 데려올 예정이다.
500스타트업의 향후 계획은
500스타트업은 벤처캐피털이지만 아직 창업한 지 4년밖에 안 된 만큼 우리도 스스로를 스타트업으로 생각하고 있다. 간혹 500스타트업이 투자하는 스타트업이 우리보다 창업한 지 더 오래된 경우도 있다. 앞으로도 많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점점 더 강한 회사로 성장할 것이다.
젊은 창업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첫째, 스타트업계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팔로우하라. 오늘 날, 온라인 세상의 좋은 점은 존경하는 사람들의 글을 쉽게 구해 실시간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스턴에 살던 대학 시절, 나는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무척 궁금해 밤낮으로 실리콘밸리의 리더들 -안데르센(Andreessen), 호로위츠(Horowitz), 데이브 매클루어(Dave McClure), 폴 그라함(Paul Graham)-의 글을 탐독했다.
실리콘밸리는 1957년 창업한 페어차일드 때부터 IT 벤처업계의 역사가 50년이 넘은 곳이다. 앞서 창업한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지혜를 얻을 수 있고, 그 사람들이 다시 컨설턴트로서 젊은 창업가들의 멘토가 되어준다.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이들의 가장 최신 블로그 포스팅을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둘째, 무슨 일을 하든 스스로 학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라. 젊은 나이에 일하기 시작했다면 학습의 속도가 빠르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해나갈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다. 단적으로 구글에서 보장된 임금을 받으면서 다닐래, 아니면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서 지분을 받고 많은 책임, 권한을 갖고 일할래 라는 두 갈림길을 두고 고민하는 젊은 친구를 본 적이 있다.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구글에서 5년 일하는 것보다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서 5년 일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꼭 스타트업에서 일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신이 어느 길을 선택하든, 그 길에서 항상 최대한 자신을 스스로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팀 채 인터뷰 영상
팀 채를 처음 만난 것은 5월에 개최된 스타트업 컨퍼런스 비론치 2014를 통해서였다. 인터뷰 목록 중에서 유독 젊어보이는 팀 채의 사진을 보고서는 어떻게 500스타트업의 상주 창업가가 된 것인지 무척 궁금해졌다. 팀 채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안녕하세요”하며 나에게 인사했다. 10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그는 한국이 몰라보게 발전한 모습을 보고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쑥스럽게 명함을 청했는데 그게 좋은 계기가 되었다.
3개월 후 필자가 실리콘밸리에 와서 로켓스페이스 밋업에 참석했을 때, 한 금발의 창업가에게 어디 좋은 밋업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상당히 큰 규모의 500스타트업 행사가 바로 내일 있어”라고 말해주었다. 밑져야 본전이지라고 생각하며 팀 채에게 연락을 했더니, 흔쾌히 행사에 초대해주었다. <스타트업의 대량확산무기> 컨퍼런스에서 다시 만난 그는 다음 주에 한국에 간다고 말했다.
그의 한국 출국을 코 앞에 두고 이루어진 인터뷰를 통해 창업가로서 그의 면모를 존경하게 되었다. 창업가에게 던지는 그의 두 가지 메시지, 늘 배우는 위치에 가라, 그리고 정신적 지주가 되는 이들의 글을 탐독하라라는 그의 조언은 필자에게 잊지 못할 충고가 되었다. ‘김치 프로젝트’라 명명하며 500스타트업을 통해 유망한 한국 스타트업들을 실리콘밸리로 데려가고 싶다는 팀 채. 쉐이커(Shakr), 크림(Cream), 비트윈(Between)에 이어 한국 스타트업의 헤러메스가 되어줄 팀 채가 실리콘밸리에 데려갈 다음 타자는 누구일지 기대된다.